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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 | Gallery JJ Project I

숨. 사라지지 않는...
Breathing. Lingering...

2013. 3. 20 (수) -  4. 10 (수)

“인간은 가장 무의미하고, 가장 피상적인 행위들 속에서도 통째로 자기를 표현한다. 달리 말하자면, 아무것도 열어 보이지 않는 어떤 버릇, 어떤 인간적인 행위란 있을 수 없다.”

                                                                          사르트르. ‘존재와 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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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결과가 있기까지 누구나 근원적 선택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것이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그러한 사건들과의 마주침 속에서 우리는 만들고, 소유하고,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순간은 그 순간 자체가 아닌 전체를 관통하는 유의미적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일상의 ‘숨’쉬는 순간에도 우리는 셀 수 없는 시공간적 닫힘과 열림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 안에 수많은 클리셰를 이루고 그것들은 음성으로, 혹은 형태로 그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이번 갤러리JJ의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숨’의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열리는 길을 통과하는 날숨과 들숨의 사이, 그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살고 소멸한다. 그렇게 의미하는 일상의 순간들에 천착하는 세 명의 작가 김시연, 정규리, 함연주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이들은 각각 작품의 재료나 내용에 있어서 지극히 사적인 일상의 흔한 소재와 공간으로 접근하는데, 여성이기에 자칫 페미니즘으로 보일 수 있는 의미까지도 아우르며 확장된 메타적 의미를 산출한다. 이렇게 사라질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은 생명을 얻고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김시연 작가는 주변에서 소재를 차용하여 일상적인 공간에서 지극히 사적인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아이를 씻겨주던 아이보리 비누,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던 시기의 지우개가루, 조금 우울했던 어느 날 아침의 말간 우유 한잔, 그리고 세제와 소금 등 그녀의 소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더욱이 그녀의 작품 속 화면은 온통 집 안이다. 그런데 그녀가 보여주는 집은 너무 정갈하고 정제되어 오히려 위태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게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하는 집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사라질 듯 아슬아슬하다. 그녀는 ‘우울증에 걸린 집’을 시작으로 ‘바리케이트’, ‘Thread', '노르스름한’에 이르는 연작으로 ‘집’이라는 공간이,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날카로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녀의 공간은 아름답고, 그래서 우리에게 다시금 ‘집’을 꿈꾸게 한다.

마치 초현실의 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정규리 작가의 큐브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자유로운 듯 떠다니고 있으나 실제로는 닫힌 공간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꺾이고 부서지게 하는 곳이다. 그래서 더욱 그 틀에 집착하며, 그 틀을 부수고 싶어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화면 속에서 보이는 인물들은 주로 작가의 주변인들이고, 일상의 촛불이나 케이크, 시계는 기쁨과 한계, 재앙의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사랑스런 분홍빛의 화면에 쏟아지는 촛불은 누군가에게는 햇살일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빗물이거나 혹은 눈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주어진 것들을 견뎌내고 있던 그녀에게 최근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캔버스는 깨어지고 세상과 어우러져 틀과 세상사이의 공간을 드러내며 이미지들이 살아난다. 더 이상 웅크리지 않고, 길을 찾지 않고 스스로 길이 되어준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머리카락 작가로 잘 알려진 작가 함연주는 큐브, 스프링, 철사 등과 같이 선으로 연결되는 소재들을 이용해 작은 단위가 무한 반복되며 스스로 생장하는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무심히 흘려진 머리카락을 주워 모아 치열하게 이어가는 그녀는 작고 가벼운 것들의 아름다움과 그것들이 모여서 빚어내는 크고 피어나는 공간에 몰두한다. ‘부드러운 긴장’으로 시작된 작업은 주변의 아련한 것들로 옮겨져 깃털, 날개 등으로 표현되며 차츰 ‘부드러운 희망’으로 나아간다, 철사를 꼬아 넣고, 니켈선을 이어 짓는 모습은 흡사 거미의 움직임을 연상시키며 페미니즘적 접근인 듯 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손맛이 나는 36.5도, 사람의 공간을 드러낸다. 동화책, 재미있는 미니어처를 즐기고, 어느 봄날 마당 귀퉁이에 피어난 글라디올러스 한 줄의 아름다움에 경이를 표하는 함연주의 화면은 작가의 희망을 따라 씨앗이 꽃으로 피어나듯 그렇게 빛을 발하며 번져간다.

사진, 회화, 혼합매체의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작가들의 최신작을 만날 수 있다.

                                                                       갤러리JJ 디렉터 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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