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량 | Taeryang Lee (b. 1965, South Korea)
드로잉과 의문의 낙서 같은 자유로운 추상회화 작업으로 잘 알려진 이태량은 20여년간 ‘그림’의 본질과 언어의 한계, 추상적 형식논리에 천착하며 ‘명제형식’을 비롯하여 ‘존재와 사고’, ‘무경산수’ 시리즈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현재 다양한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미술관을 비롯하여 컬렉터에게 작품이 소장되어 왔다.
일견 즉흥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의 직관적 그림으로 다가오는 그의 작업은 세상에는 말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 곧 언어의 한계, 이해되지 않는 그 자체를 드러내려고 한다. 즉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켄슈타인의 철학을 우회적으로 생각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작가는 그 표현의 한계를 인정하며 자기 독백적으로 놀이하듯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다양한 문자나 기호, 인체 등을 조합하거나 해체하고, 덧칠하여 지우고 쓰는 행위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작품 속 맥락 없이 애매하게 쓰여진 문자나 기호 등은 그 본래의 의미로 읽히기보다 한낱 명제의 표현의 한계를 나타내주는 도구로, 나아가 작품의 조형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작가의 그림이 주는 다소의 난해함은 해소가 된다. 그저 낙서의 시적 의미처럼 각자의 또 다른 생각과 사고를 유발하고, 혹은 질료의 흔적을 감각으로 받아들이거나 다채로운 색이 주는 에너지를 느낀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부정과 긍정이 공존하는 화면, 논리적이고 사색적인 동시에 본능적이고 감각적 에너지를 촉발하는 그의 그림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이태량 작가가 수년간 고수해온 <명제형식>에서, 두서없이 흘러가는 의미 없는 말들보다 ‘명제’는 진실 혹은 거짓임을 밝혀낼 수 있는 뜻이 확고한 말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의 명제가 말로 풀이할 수 있는 학문을 뜻한다면, 작가의 명제는 그 바깥의 것, 학문이 담아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은유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을 통해 풀어내는 것을 뜻한다. 복잡 미묘하게 얽히고 설킨 선들과 붓놀림, 숫자들은 우주만물이 유기적 관계 속에 포괄되어 있음을 얘기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25920라는 숫자는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축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인 25920년을 뜻하는 동시에, 바둑판의 내부칸과 외부칸 수를 곱한 숫자이자 인간의 분당 호흡수를 도출해낸 숫자이다. 곧 만물은 유기적인 관계가 있음이다. 과감한 붓놀림으로 커다란 X표시를 통해 반항적인 은유를 보여주는가 하면 다채로운 팔레트의 색깔들을 활용해 명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도출해낸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표현의 한계를 새삼 확인시킨다.
Taeryang Lee, well-known for his abstract painting that appears like indefinite scribbles, has been working on Propositional Form, Existence and Thought, and Liberated Landscape series for over two decades, exploring the essence of painting, limits of language, and abstract formal logic. He actively collaborates with various companies, and his works are well received by collectors and museums.
Seemingly intuitive work charged with fortuity and improvisation attempts to reveal the things that cannot be said or understood, that is, the limits of language. Lee visually expresses Wittgenstein’s quote,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 Lee concedes the limitation of expression and paints as if he playfully soliloquizes. It is executed by combining, dismantling, effacing, and redrawing letters, symbols, and bodies. The signs vaguely written without context on his canvas become indicators of the limit of the proposition rather than being read as their original meaning. They are a plastic element in the work. As if a mere poetic meaning of doodling, if one can induce a chain of thoughts or accept the senses and energy from the pigment and color, it suffices the purpose. His painting is thus paradoxical in which opposing elements coexist such as negation and affirmation, logic and intuition.
The word ‘proposition’ in Proposition Form series that he has adhered to for years implies a definite meaning that can reveal truth or falsity. Its dictionary definition may mean a study by speech but his use of the word is to unravel the unknowns in metaphorical and artistic ways that the study cannot capture. Complex and subtly intertwined shapes and numbers seem to show all things in the universe are in an organic system. For instance, the frequently appearing number ‘25920’ represents the number of years to take the Earth’s tilted axis to return to its original position, as well as a multiplied number of the internal and external grid of the go board. All things have an organic relationship. He shows a rebellious metaphor with a large X mark brushstrokes and sometimes uses a colorful palette to create a buoyant mood. His work confirms the limits of expression beyond human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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